6월 29일(토) 단동을 출발하여 고구려의 전기 유적지가 있는 집안시로 이동했다.
집안은 고구려문화의 발상지이자 고구려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집안은 고구려 2대 유리왕이 졸본성(오녀산성)에서 천도하여 고구려의 수도였던 곳으로 고구려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어서 200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시 중심에는 국내성의 성벽이 일부 남아있고, 환도산성과 광개토태왕비와 장수왕릉이 유명하고 고구려의 고분 약 1만 2000기가 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는 유리왕이 졸본성에서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긴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유리왕 19년(기원전 1년) 8월에 제물인 돼지가 달아나는 사고가 발생하여 제물을 관리하는 탁리와 사비라는 자로 하여금 뒤를 쫓게 하였단다. 그런데 장옥택이라는 곳에 이르러서 돼지를 찾아서 다리 근육을 끊었는데 이 사실을 왕이 듣고 ‘제천할 희생을 어찌 상하게 한 것이냐.’ 하며 두 사람을 구덩이에 넣어 죽였다고 한다. 그런데 2년 후에도 또 제물인 돼지가 달아났는데, 이를 뒤쫓던 관리가 따라가보니 돼지가 국내 위나암(환도산성)이라는 곳에서 샘물을 먹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이 지역이 수도로 삼기 좋다고 임금께 아뢰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서기 3년에 고구려의 수도를 국내로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게 되었다고 한다.
[ 국내성 ]
국내성은 고구려의 유리왕 2년(서기 3년)에 수도를 졸본성에서 이곳으로 옮겨온후 장수왕 15년(서기 427년)까지 400여년 동안 고구려의 수도였던 곳이다. 국내성 조망은 실망스러울 정도의 관광이다. 버스를 타고 집안 시내를 지나면서 건물들 사이에 보이는 성벽을 보면서 '저기 보이는 것이 국내성입니다'라는 설명으로 끝났다. 관광에서 "조망"이라는 말처럼 허무한게 없다. 그야말로 지나가는 버스 안에서 차창으로 내다 보는 게 조망이라는 것이다. 내려서 간단히 사진 찍을 틈도 주지 않는다.
버스 차창 밖으로 내다보며 찍은 국내성. 유리왕은 주몽이 개국한 졸본성을 떠나 이곳으로 수도를 옮겼고, 이어서 환도산성으로 다시 옮겼단다. 국내성은 집안시내의 곳곳에 성의 일부가 남아있다고 한다.(50~60년대의 서울시내에 있던 서울성곽과 같다고 할까?)
(인터넷에서 가져온 국내성)
[ 환도산성 ]
환도산성은 국내성에서 북쪽으로 약 2.5키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지리적인 이점으로 왕이 피난했던 곳으로 보기도 하고 또 다른 수도라고도 한다. 삼면이 험준한 절벽으로 되어있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내부에는 충분한 물이 있어 방어하기에는 아주 좋은 이점을 갖고 있는 지역이란다. 동북공정에 의해 한창 공사중이라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단다.
환도산성의 입구. 좌.우측과 정면에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산 넘어는 절벽으로 되어 있어 적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가 아주 유리하단다.
인터넷에서 가져 온 환도산성. 천혜의 요새지이다.
산성 안으로 중간쯤 올라가니 환도산성에서 외부와 연락했던 봉화대가 나타난다. 우리가 도착 전에 비가 많이 내려 관리인들이 모두 철수한 상태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봉화대 앞에 선 아내.
봉화대 앞에선 나.
봉화대 앞에 봉화대를 지키던 병사들이 서 있던 초소 자리란다.
저 가운데다 왕궁터를 복원공사중인 곳이다.
입구에 성곽의 일부가 보인다.
[ 5호 고분 ]
장군총(장수왕릉), 광개토태왕비, 광개토태왕릉이 있는 곳에는 고구려 고분들이 여러개 있다. 가이드는 그 중에서 꼭 보아야 할 곳으로 묘의 내부벽화를 볼수 있는 5회분5호묘를 보기를 권하였다. 물론 입장료는 별도로 부담해야 했다. 다시 올 것도 아니고 이왕 온 김에 모두 기꺼이 입장료를 지불하고 관람하기로 했다.
여러 묘중에서 따로 떨어져 있는 5회분5호묘로 향했다.
묘비.
5호묘를 배경으로 선 우리 부부.
조병용, 송복숙 부부
사신총 입구에서 정태영, 조병용, 나
사신총 입구에서 정태영, 조병용, 우리 부부
고분을 떠나 환도산성으로 이동하는데 비가 쏟아졌다. 차창가로 보이는 고분군들을 찍었다.
[ 5회분5호묘의 벽화 ]
묘의 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있다. 15명씩 입장하여 안내원이 약한 후래쉬로 묘지 내부의 지붕위에 있는 8방벽에 그려진 벽화를 비치며 설명해 준다. 사진은 밖에 나오면 전시실이 따로 있어서 전시되어 있다. 전시실의 사진을 찍었는데 후래쉬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거의 볼수가 없다.(아래 사진은 인터넷에서 찾아서 올린 사진 임)
[ 훈강가의 절경 ]
단동에서 집안으로 가는 길에 고개를 넘어가면서 고개마루에서 경치가 좋은 곳이라면서 차를 세운다.
훈강이라는데 흘러서 압록강과 합류한단다. 강이 휘어져 흘러가는 모습이 산아래 강가의 마을과 들판과 어울려 경치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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