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토) 단동에서 고구려의 전기 유적지가 있는 집안으로 이동하였다.
[ 장수왕릉 ]
장수왕(서기 394년-491년)은 광개토태왕의 뒤를 이어 서기 412년 고구려의 20대왕이 되었다. 414년에 광개토태왕비를 건립하였고, 427년에 수도를 평양성으로 옮겨 남진정책을 펴 아산만부터 경상북도에 이르는 고구려 왕중에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였다. 가장 넓은 땅에, 가장 잘 갖추어진 제도, 선진적인 문화를 이루어 고구려의 정치∙사회∙문화적인 전성기를 이루었다고 한다. 98세까지 장수한 왕으로 시호를 장수왕으로 하였단다.
왕릉 관리사무소 전경.
처음 발견당시에는 장군의 무덤으로 알고 장군총으로 불렀단다.
집안에 있는 왕릉을 비롯한 고분들 중에서 장수왕릉은 외형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화강암 표면을 잘 가공한 돌을 7단계의 피라미드형으로 쌓은 돌무지무덤(적석총)으로, 기단의 한 변 길이가 33m, 높이가 약 13m 이다. 기단의 무덤둘레로 호분석이라고 하는 큰 돌이 한변에 3개씩 세워져 있는데 쌓은 돌이 밀려 나가지 않게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장수왕릉 앞에 선 아내(위)와 나(아래)
장수왕릉 옆에 있는 장수왕 후궁의 묘. 산채로 매장한 순장의 흔적이 있다고 한다. 입구에 세워진 큰 돌은 입구를 막았던 돌이란다.
[ 광개토태왕 비 ]
장수왕이 아버지인 광개토태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서기 414년에 세운 우리나라 최대 비석(높이가 약 6.27미터, 폭이 1.38미터~1.95미터) 이다. 비문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단다.
제1부 서문에는 고구려의 시조 추모왕(동명성왕)의 건국 설화를 비롯해 유리왕과 대무신왕의 왕위 계승, 그리고 17세손인 광개토태왕의 약력과 업적, 비의 건립 경위 등이 새겨져 있단다. 제2부는 광개토태왕의 정복활동을 연대순으로 기록했는데, 비문의 핵심이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 한단다. 영락 5년(395)에 거란에 대한 정벌, 이듬해 백제를 공격해 58성을 쳐부수고 백제 아신왕의 항복을 받았고. 영락 8년에는 숙신을 복속시켰고, 영락 10년에는 신라에 구원군을 보내 왜를 무찔렀고, 영락 17년에는 후연, 백제와 싸워 큰 승리는 거두었고, 영락 20년에는 두만강유역의 동부여를 복속시켰고, 그리하여 광개토태왕이 정복한 지역은 모두 64성 1400촌에 달했다고 새겨져 있단다. 제3부는 능을 지키는 수묘인 330가호의 출신지와 연호수 및 수묘인 관리 법령이 새겨져 있단다.
풍상에 의한 마모를 방지하기 위해 유리로 만든 보호막을 설치했다. 광개토태왕을 호태왕이라고도 부른단다.
광개토태왕 비 앞에 선 아내(위)와 나(아래)
[ 광개토태왕비에서 보이는 북한 ]
광개토태왕비는 압록강으로부터 약 1키로정도 떨어져 있다고 한다. 태왕비에서 태왕릉으로 가는 길에 가까이에 민둥산과 하늘 높이 솟은 굴뚝이 보인다. 저 곳은 압록강 건너 북한이란다. 북한에 있는 굴뚝은 지하 동제련소라고 하는데 근래에는 굴뚝에서 연기가 난 적이 없다고 한다.
[ 광개토태왕 릉 ]
소수림왕 4년(서기 374년)에 고국양왕의 아들로 태어나 서기 391년에 고구려 19대 왕으로 즉위하였고 서기 413년 39세에 죽었다. 소수림왕의 정치적 안정을 기반으로 영토를 확장하였으며, 한국 최초로 '영락'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고, 동예를 통합하고 동부여를 정벌하였다. 광개토태왕 비에는 광개토태왕 때에는 “나라가 부강하고 백성이 편안했으며 오곡이 풍성하게 익었다.”고 그의 업적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장수왕릉에 비해서 규모는 컸었던 것 같은데 너무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광개토태왕릉 입구에 선 아내. 안에는 돌로된 널판만이 놓여 있다.
광개토태왕릉 입구에 선 나와 조병용.
[ 전시관에서 찍은 광개토태왕 릉과 비 ]
처음 발견 당시의 광개토태왕 릉의 모습이란다.
처음 발견 당시의 공개토태왕 비의 모습. 옆에 서 있는 사람이 비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란다.
비문을 다시 종이에 옮겨 써 놓은 것이다. 중간 중간에 네모로 된것은 마모되어 알아 볼수 없는 문자란다.
[ 집안 시내모습 ]
점심식사를 한 식장
집안 시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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