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9월28일) 처음 방문한 도시는 아이제나흐이다
아이제나흐는 음악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고향이고, 마틴루터가 성경을 번역했던 바르트부르크성이 있는 도시이다.
루터가 교황청으로부터 파문 선고를 받고 은신해 있던 바르트부르크성
루터는 1521년 1월 3일 교황의 교서에 의해 사제직에서 파면된다. 그리고 제후들의 노력으로 황제로부터 신변보장을 받고 보름스의회에서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갖는다. 그러나 보름스의회 청문회에서도 루터가 그의 주장이나 저술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하자 사람들은 루터를 처형할 것을 요구한다(100년 전 지기스문트 황제의 안전통행증을 갖고 있던 체코의 종교개혁가 얀 후스를 같은 절차를 거쳐 처형했음). 그러나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는 그를 처형하지 않고 그에게 3주 이내에 비텐베르크로 돌아 갈 것을 명령한다. 비텐베르크로 돌아가던 루터는 5월 4일 밤에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가 보낸 기사들에 의해 납치되어 1521년 5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10개월간 바르트부르크 성에 게오르그 기사로 신분을 위장하고 살게 된다(바르트부르크는 독일어로 "망보는자"라는 뜻이라 한다).
루터는 이 곳의 좁은 방에서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다. 당시 성경은 라틴어와 헬라어로만 되어 있어서 신부들만 성경을 볼수 있었고 일반 신자들은 성경을 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함에 따라 신자들은 누구나 성경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루터의 성경은 인쇄기술의 발달로 삽시간에 전 독일에 퍼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래서 독일어의 표준화를 이루는데 큰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루터가 숨어 있던 루터 방. 이 방에서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했다고 한다.(현재 보수 공사중이고 현수막으로 사진이 걸려 있다)
바르트부르크 성루의 모습
바르트부르크성에서 아내의 포즈
바르트부르크성에서 함께한 아내와 나.
바르트부르크성에 있는 호텔. 유럽에서는 고성이 경치가 좋아 호텔로 운영되는 곳이 많다고 한다.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바라 본 아이제나흐 시가지. 친절한 일본 관광객 노인이 찍어주었고, 답례로 나도 그들의 단체사진을 찍어 주었다.
바르트부르크 성 문 다리. 쇠사슬로 다리를 들어 올리면 성내 출입이 어렵게 되어 있다.
바르트부르크 성 문앞. 역광이라 모두 검게 나왔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집과 동상
바흐의 생가(바흐 하우스). 현재는 바흐박물관으로 사용중이다.
바흐하우스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동상.
아이제나흐 시내
아이제나흐에서 점심식사를 한 식당. 바로 앞에 바흐의 집과 동상이 있다.
식당 안에는 유명인사들이 이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고 당시 사진이 여러장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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