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18일(수)
[ 트래킹 픽업 ]
파란하와이에서 진행하는 진주만 투어를 신청하였다. 투어 참가자는 본인이 원하는 날자에 다이아몬드 헤드 일출 트래킹 픽업을 제공한다. 우리는 7월 18일 같은 날 두가지를 모두 하기로 했다. 파란하와이에서는 오전 5시 일리카이 호텔 깃대봉앞으로 BWT버스를 보내 다이아몬드 헤드까지 픽업을 해주었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터널입구에서 주차장이 오픈하기를 기다렸다가 오전 6시경부터 다이아몬드 헤드 분화구내에 있는 주차장에서부터 트래킹을 시작하였다.(주차장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는것 같았는데, 우리는 차를 타고 들어가서 별도로 입장료는 내지 않았다. 차량 5달러, 사람 1달러)
터널 입구에서 기다리는중 주변의 모습. 아직 일출전이라 사방이 어둡고, 시내의 불빛만 보민다. 산 언덕위의 불빛이 아름답다.
터널 입구에서 조금 밝아진후 모습.
분화구 안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터널입구, 주차장 오픈 시간(6시)전이라 차들이 들어가지 못하고 줄을 서 있다.
[ 다이아몬드 헤드 ]
다이아몬드 헤드 전경(인터넷에서 가져 옴)
다이아몬드 헤드는 와이키키 동쪽에 우뚝 솟아있는 사화산 분화구로 약15만년전 분화 때 바다로부터 솟아오른 산이란다. 와이키키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완만한 능선을 이루고 있는 자줏빛의 사화산인 다이아몬드 헤드는 와이키키 비치와 함께 하와이의 상징이다. 해발 232m, 분화구의 지름이 1,200m에 달하는데, 옛날의 원주민들은 이산을 레아히(참치이마)라고 불렀으며 신성한 장소로 여겨 신전을 짓고 해마다 성대한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825년 영국의 한 선원이 이곳에서 반짝거리는 돌을 발견하고 다이아몬드라고 생각했단다. 그 이후부터 이 산을 다이아몬드 헤드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나중에 이 돌은 감람석(수정)으로 밝혀졌단다.
분화구 안에 평지가 있어 입장객들은 터널을 통해 평지로 들어와 주차를 할수 있다. 정상에는 군사요충지로 큰 벙커가 있다. 바닷가쪽에 있는 등대는 1917년에 세워진 곳으로 국립유적지로 되어있단다. 과거에는 원주민들의 공동묘지 였다고 하며 1900년대에 들어서는 군사시설로 활용되었단다.
산 위에 있는 2개의 지하터널, 가파른 175개 계단, 군용벙커를 등산로로 이용하고 있으며, 정상까지는 왕복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이 소요된단다. 정상에서는 와이키키와 호놀룰루의 전경과 오하우섬의 남부 지역을 조망할수 있단다. 트래킹 코스에는 터널이외에는 그늘이 전혀 없다는 것이 흠이다.
[ 다이아몬드 헤드 트래킹 ]
입구에 세워진 트래킹 안내도
일출 트래킹에는 약 100여명 이상이 참가한것 같았는데, 대부분이 일본인여행객들이었다. 한국인은 우리 일행 3명 밖에 안 보인다. 다이아몬드 헤드 정상까지 난 길을 따라 정상까지 올라갔다. 길은 완만한 경사로 구불구불 이어졌고, 정상이 가까워 오자, 터널을 두번 거치고, 가파른 계단도 두번 올라야 했다. 고개를 숙여야 나갈수 있는 정상에 있는 벙커를 빠져나오자 저아래 넓다란 검푸른 바다가 보이고 해안가에 있는 빨간색 지붕의 등대도 보인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구불구불 오르게 된다.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정상부근에 있는 벙커, 가파른 계단을 올라 터널안에서 빙빙 돌아 올라가면 벙커 안으로 연결되고, 머리를 숙여 벙커 밖으로 나와야 한다.
와이키키에서 하나우마 베이에 이르는 아름다운 주택가들이 있는 언덕들의 모습과 동쪽으로는 83번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해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우리가 머물고 있는 와이키키의 모습이 들어온다.
벙커를 빠져나오자 만나는 하늘, 바다, 등대, 산의 모습과 시원한 바람이 탄성을 일으킨다.
와이키키 쪽의 모습.
와이키키쪽의 모습(인터넷에서 가져옴)
분화구 안의 모습, 가운데 구조물인 주차장,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터널, 분화구 건너편으로 동쪽(하나우마 베이쪽) 해안이 보인다.
정상에 올라오자 세찬 바람과 함께 약간의 빗방울이 날린다. 정상은 면적이 좁아 다음에 올라오는 사람들을 위해 빨리 자리를 비켜 주어야 한다. 바로 오던 길을 되돌아 내려왔다.
주차장까지 다 내려오자 소나기가 쏟아져 화장실 옆에 비를 피하는 곳에서 비가 그친후, 우리를 픽업해 준 차를 찾았다. 그런데 기다리기로 했던 차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없었다. 분명히 이자리에서 기다린다고 했는데, 그 자리에는 다른 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우리를 안내해준 가이드도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찾다가 픽업당시 다른 정류장에서 만났던 일본인 가이드를 만났다. 우리를 일본인 여행객인줄 잘못알고 일본어로 말을 걸었다가, 우리 가이드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미안해 했던 그 사람이었다. 그에게 우리차번호를 대고 어디 있는지를 물었더니, 다른 한국 가이드를 불러주고는 다른 차로 안내해 주었다. 우리 3명은 그차를 타고 진주만 투어 가이드를 만나러 이동하였다.
[ 진주만 ]
오아후섬의 호놀룰루에서 서쪽으로 10㎞ 떨어진 남쪽해안에 있는 진주만은 클로버 모양으로 인공개조한 항만이다.하와이 사람들은 이곳에서 진주조개들이 자랐기 때문에 와이모미(진주 바다라는 뜻)라고 불렀다고 한다. 1887년에 체결된 미국과 하와이의 조약으로 미국은 이곳을 급탄항과 수리항으로 독점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고한다. 그러나 실제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때 태평양 기지로서 이 항만이 갖는 전략적 가치가 입증되면서부터였고, 1908년 해군기지가 세워졌고, 1919년에 선박을 수리할수 있는 건선거(배 수리하는 곳)가 완공되었다고 한다.
현재 진주만에는 미국 해군 조선소와 보급소, 기지 등이 있다. 6·25전쟁과 베트남 전쟁 때 이 항만 구조물들은 양국 전쟁지로 출정하는 부대와 장비의 집결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진주만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이 이곳을 기습공격하면서 였다. 일본 해군전투기가 오하우섬 진주만에 있는 미군기지를 기습공격하여 미국 함선이 침몰하고, 비행기가 격추되는 등 군인 및 민간인 2,403명이 사망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이 전쟁으로 미국함대가 일시적인 타격을 입었고, 그결과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로 인해 승승장구하던 일본의 멸망을 초래했다고 한다. 이때 가장 큰 피해를 본 함선을 기리기 위해 USS 애리조나 메모리얼을 침몰된 선체 위에 지어 전쟁의 아픔을 보여주고 있단다.
[ 진주만 투어 ]
파란하와이에서는 공인된 한국인 가이드가 진주만의 중요한 시설들을 안내해준다. 순서는 호놀룰루 커피 컴퍼니에서의 조식, 태평양항공박물관, USS미주리 전함, 해군 카레 중식, USS애리조나 메모리얼를 둘러본다. 진주만 투어를 할때는 가방(백팩, 크로스백, 핸드백 등)을 가져갈수가 없다. 진주만에 들어가기 전에 신고를 하는데, 차안에까지 들어와서 짐이 있는지 검사를 한단다. 짐이 있으면 보관료를 내고 맡기도 들어갈수 있단다. 그리고 다리를 건너갈때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단다. 그러나 다리만 벗어나면 촬영이 가능하단다.
[ 호놀룰루 커피 컴퍼니 ]
카페겸 박물관이다. 세계 3대커피중 하나라는 하와이 코나커피의 역사와 커피 관련기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거대한 커피 로스터기도 있고, 커피 맛을 시험하는 실험실도 있다. 커피를 종류별로 시음할수도 있고, 식사도 할수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하와이식 돼지바비큐와 팬케이크로 아침식사를 했다.
오래된 독일제 로스터기.
커페 앞에서. 가이드 한분이 우리 세사람을 위해 버스를 직접 운전하며 가이드 하였다.
아침 식사.
하와이식 돼지바비큐와 팬케이크
시음용 커피. 세종류의 커피가 제공되며, 리필이 가능하다.
[ 태평양 항공 박물관 ]
진주만 전쟁당시 비행장이 있던 장소에 세워져 있다. 당시 사용하던 활주로와 관제탑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단다. 37번 격납고와 79번 격납고가 항공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단다. 79번 격납고의 유리창에는 전쟁당시 총알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박물관에는 전쟁당시 사용되던 전투기, 폭격기, 연습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쟁당시 사용되었던 활주로.
관제탑. 영화에서는 파괴되는 모습이 나왔으나, 실제로는 전쟁에서 파괴되지 않았단다.
박물관 정문에서.
깨어진 유리창, 총탄자국들. 전쟁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한단다.
79번 격납고.
37번 격납고.
왜가리들이 놀고 있다.
미주리호로 이동하려는데, 앞쪽에 있는 차가 갑자기 나타나 우리를 미주리호까지 태워다 주었다.
[ 미주리호 ]
미주리호 입구에서.
제2차세계대전 당시 미해군 참모총장이었단다. 맥아더 장군이 아니란다.
미주리함 전경
미주리함 선상에서.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 태평양함대에속했던 기함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건조된아이오와 급 전함 4대 가운데 하나이다. 뉴욕에서 건조되어 태평양으로 가기위해 파나마 운하를 지나야 했기때문에 당시의 파나마운하 넓이에 맞게 좁게 건조되었단다. 가장규모가 큰 군함에 속하며, 배수량이 5만8천t이고 16인치 포 9대로 구성되는 주력포대를 보유했다. 35노트의 속도로 항해할 수 있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반인1944년 1월 29일 진수, 6월 11일 취역하여 태평양지역 전투와 6·25전쟁에 참전했고1992년 3월 31일 퇴역했다. 1945년 9월2일 제2차 세계대전 종전시 일본이 무조건 항목한 문서의 서명식이 열렸던 전함으로 유명하다.
미주리 호는 1945년 1월 태평양 전선에 투입되어 이오지마 전투, 오키나와 전투에 참여, 항공모함의 호위 임무와 화력 지원 임무를 맡으며, 일본의 큐슈와 홋카이도를 포격하기도 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목하자, 연합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항복작전을 위해 미주리호를 선택했고, 미주리호는 도쿄 만으로 진주해 들어갔다.
미주리호 선상의 일본의 무조건 항복문서 조인식이 열렸던 장소표시
항복문서. 위는 미국측 것, 아래쪽은 일본측 것인데, 표지의 질이 다르단다.
항복 조인식의 모습 사진. 위는 미국측 대표, 아래는 일본측 대표.
항복조인식때 미국측이 식장으로 내려왔던 계단. 일본측은 조그만 배를 타고 아래에서 올라왔단다.
1945년 9월 2일 일요일 아침 맥아더의 초청으로 9명의 일본 대표단이 승선했으며, 외무성 장관 시게미쓰 마모루와 우메즈 요시지로 장군이 일본군의 무조건 항복을 공포하는 2장의 문서에 서명했다. 미주리호는 6·25전쟁(1950~53)에도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 1950년 9월 삼척 지역을 포격했으며, 이후 흥남 철수 등 미8군의 작전을 지원했다고 한다.
6·25전쟁 후인 1955년 퇴역했다가 198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재취역하여 중동지역 등에서 작전에 참여했으며, 1990년 중동전이 발발하자 참전, 토마호크 미사일과 주포를 발사하는 등 화력 지원을 담당했다. 1992년 3월 미국의 롱비치에서 퇴역했으며, 1998년 하와이 호놀룰루의 미주리 기념사업회에서 인수하여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함내 전체를 돌아볼수 있으며, 전쟁장면과 일본의 항복조인장소, 군함내 장병들의 생활모습, 맥아더장군 집무실 등을 볼수 있다.
미주리함 선실내의 모습들.
카미카제 특공대의 비행기가 충돌한 곳의 모습. 조금 찌그려져 있다. 어린 비행기 조종사가 마지막 순간에 눈을 감아서 배에 충돌하지 못하고 옆에 부디쳤단다. 미군은 조종사의 유해를 수습하여 바다에 장계를 치러주었다는데, 당시 조총을 발사한 장소, 시신을 바다에 던진장소를 표시하여 그곳에서 상황을 설명해 준다.
[ 진주만 해군 카레 ]
전함에 승선한 미해군들에게 날자가 가는 것을 알게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번씩 카레를 식사로 제공했다고 한다. 우리는 점심식사로 이 해군카레를 먹었다.
[ USS 애리조나 메모리얼 기념관 ]
일본의 진주만공격시 미국 군함 애리조나호가 침몰되어1,102명의 선원이 목숨을 잃었다. 이때 가라앉은 배의 선체에 지금은 흰색의콘크리트-강철 구조물이 걸쳐져 있는데,이것은 1962년 5월 30일 국립기념물로지정되었다. 물속에 가라앉아있는 선체와 십자모양으로 설치하였으며, 물속의 선체와 미주리 전함은 일직선상에 위치한단다.
기념관으로 사람들이 들어갈수 있었으나 몇년전 선박이 기념관과 충돌사고가 발생하여 이후에는 안전을 고려하여 선박으로 주위만 돌아 보기만 할수 있단다.
선박 승선권. 선박은 애리조나호를 비롯한 전함들이 침몰한 각 지점을 볼수 있도록 한바퀴를 도는데, 선박내 좌측이나 우측에서 앉은 관광객이 모두 잘 볼수 있도록 배를 좌우로 한번씩 돌려준다.
침몰한 전함의 일부가 바다위로 나와있다. 멀리 보이는 하얀 구조물은 다른 전함들이 침몰한 위치이다.
침몰된 애리조나호 바닥에서는 아직도 조금씩 기름방울이 올라와 조류를 따라 기름띠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기름방울을 검은 눈물이라고 한단다.
잠수함의 모습. 투어 코스에 빠져있어서 잠수함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점령했던 아시아 지역을 표시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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