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18일
[ 세인트폴 교회 ]
1521년 포르투갈 점령기에 말라카 중심인 세인트 폴 언덕에 세워진 가톨릭 교회이다. 이후 가톨릭을 적대시하던 네덜란드와 영국의 공격으로 대부분 파괴되어 벽체만 남아있다. 교회 내부에는 여러 석판을 세워 놓아 당시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으로 말라카의 지배층이 바뀌던 시대를 보여 준다. 성당 앞에는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 신부의 동상이 말라카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자비에르 신부는 원래 스페인의 왕족이었으나, 선교를 위해 포르투갈 신부가 되어 평생을 중국, 인도, 말레이반도에서 보내다가 1553년 중국에서 숨졌다. 그의 유해는 2개월만에 그가 자주 들렀던 세인트 폴 성당으로 옮겨져 9개월간 안치됐다가 선교본부가 있던 인도의 고아로 보내졌다. 고아로 보내기 위해 그의 유해를 꺼냈을 때 죽은지 11개월이 지난 시체가 전혀 부패하지 않은채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이 소식이 로마 교황청에 전해지자, 60년만에 자비에르 신부를 성자로 추앙하고, 시체의 일부를 로마에 묻고 그 자리에 기념교회를 짓기로 했다. 이에 다시 자비에르 신부의 유해를 무덤에서 꺼냈는데, 유해의 모습이 선종할 때 모습 그대로였을 뿐만 아니라 오른쪽 손목을 절단하자 빨간 피까지 흘렀다고 한다. 또한 숨진지 4백년후인 1953년에 세인트 폴 성당 앞에 세운 자비에르 동상이 제막 6개월만에 번개에 맞아 쓰러진 나무에 부딪혀 오른팔이 부러져서 동상마저 고아에 안치된 신부의 유해와 똑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동상의 팔목은 영원히 사라져 버렸단다. 현재 고아에는 신부의 무덤이 있고 로마에는 자비에르 신부의 이름을 딴 기념교회가 있다고 한다. 그의 생전에 있어던 사건중 하나는 바다에서 풍랑이 일자 자비에르가 바다에 십자가를 던졌더니, 사나운 풍랑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후 어부가 같은 자리에서 게를 건져 올렸는데 신기하게도 자비에르의 십자가를 쥐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말라카에서는 등에 십자 모양의 무늬가 있는 게는 성스럽게 여겨 잡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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