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여행/북유럽

스웨덴 스톡홀롬 카크네스 타워, 바사박물관, 왕궁, 노벨 박물관 외관, 구시가지

방윤화 2017. 10. 18. 11:58

2017105()

오전 중에는 보로스 호텔에서 출발하여 스톡홀름까지 이동하였다. 이동 중에는 스웨덴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베테른 호수를 보면서 이동하였고, 차안에서 이번 여행에 참가한 사람들이 자기 소개와 여행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스톡홀름에 도착하여 카크네스 타워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바사박물관, 감라스탄 구시가지, 왕궁, 왕의교회 대성당, 대광장, 노벨박물관을 보고 Best Western Plus Sthlm Bromma 호텔에서 숙박을 하였다.



스톡홀름 시가지가 보이는 언덕에서.


[ 스웨덴 ]

스웨덴은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동남부에 위치한 나라로 노르웨이(서쪽과 북서쪽), 핀란드(북동쪽), 보트니아 만, 발트 해(남동쪽), 북해(남서쪽)와 경계를 이룬다. 남쪽 끝은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덴마크와 마주하고 있다. 면적은 약 447이다. 바이킹 시대(9~10세기)에 스웨덴 민족은 발트 해와 흑해 사이의 동유럽에서 해상무역을 통제했으며, 서유럽 영토를 침략했다. 스웨덴은 11~12세기에 통일되었고 그리스도교 국가가 되었다. 12세기에 핀란드를 정복하고 14세기에는 노르웨이와 덴마크와 통합해 단일 왕국이 되면서 덴마크왕의 통치를 받았으나, 1523년 구스타프 1세 바사가 스웨덴 왕위에 올라 독립하였다. 이 때 종교개혁의 물결이 스웨덴에도 밀려들어 루터교를 국교로 삼게 되었다. 17세기에 스웨덴은 발트 지역에서 강대국으로 부상했고,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독일 프로테스탄트교도들과 연대해 오스트리아 로마 가톨릭 교회와 전쟁을 벌였다. 이후 스웨덴은 러시아와의 대()북방전쟁(1700~21)에서 카를 12세의 죽음(1718)이후 몰락하기 시작했다. 1808년 러시아에게 핀란드를 내어주고, 1905년 오스카르 2세의 통치기간중에는 노르웨이도 독립하였다.

스웨덴은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사회보장 및 부의 평등 분배와 같은 준()사회주의 정책을 추구하는 현대 복지국가이다. 세계에서 가장 포괄적인 사회복지제도를 수립했는데 비용은 개인 소득에 대한 세계 최고의 세율로 이를 충당한다. 사회보장제도는 거의 무제한적인 혜택을 주며 의무적으로 가입해야하는 의료보험 제도는 진료비의 거의 전액을 부담한다. 공용어는 스웨덴어이고, 화폐단위는 스웨덴 크로나(SEK)이다.


[ 스톡홀름 ]

스톡홀름은 발틱해와 멜라렌호가 만나는 곳에 위치하며, 1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어 물위의 도시, 북쪽의 베네치아라고 불린다. ‘스톡홀름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을 처음 발견한 사람들이 멜라렌 호 상류에서 통나무를 동동 띄워 땅에 닿는 곳에 도시를 건설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단다. Stock은 통나무라는 뜻이고 holm은 섬이라는 뜻이란다.


[ 카크네스 타워 ]

카크네스 타워는 1967TV송신용 타워로 세워졌으며, 스웨덴의 텔레비전, 라디오 및 위성 방송의 주요 허브로 사용된다. 타워의 높이는 안테나를 포함하여 170m(안테나 제외시 155m)로서 전망대에서는 서쪽으로 스톡홀름시와 동쪽으로 스톡홀름 군도를 볼수 있다. 스웨덴의 방송 회사 인 Teracom의 소유로, 탑의 이름은 이 지역의 고대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스톡홀름에 도착하자마자 간 곳은 점심식사를 위해 카크네스 타워로 향했다. 우리나라의 남산타워처럼 콘크리트 타워의 꼭데기에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고, 그 안에 식당이 있었다.




[ 바사 박물관 ]


바사(Vasa)호는 스웨덴 해군의 주력 군함으로 사용하기 위해 1626년부터 2년에 걸쳐 스웨덴 국왕이었던 구스타프 아돌프 2세의 명령으로 건조되었다. 길이 69m, 높이 52m, 무게 1200톤으로, 3개의 돛대에 10개의 돛이 달려 있고, 24파운드 포탄을 사용하는 64개의 대포가 장착된 당시 가장 크고 강력한 군함이었다. 당시 최고의 조선사인 네덜란드 출신 헨릭 히버트슨의 감독 하에 400여명의 기술자가 투입되어 건조되었다. 1628810일 국왕을 비롯한 국빈들을 모시고 진행된 출항식에서 출항과 함께 바사호의 포신에서 예포를 발사하였는데, 이와 함께 배가 기울며 출항한지 20분만에 해저에 침몰하고 말았다. 침몰이유는 당초의 설계계획보다 많은 수의 대포를 싣게 됨에 따라 상부의 하중이 커져서 조그마한 충격에도 배가 균형을 잡을 수가 없게 된 것이 원인이었단다.

이후 300여년이 지난 1950년대 초반 난파선 잔해에 대해 연구하던 안더스 프란젠이라는 사람이 바닷물 속에서 목재 잔해를 갉아먹는 좀조개는 소금기가 적은 발트 해에서는 잘 번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1956년 바사호의 인양을 시작하였다. 수년 간의 준비 기간을 거친 후 1961424일 바사호를 수면 위로 들어 올렸고, 파손을 방지하기 위한 보존작업을 하였다. 배를 물로 씻어내고, 나무에 서서히 스며들어 물을 밀어내는 수용성 밀랍 물질인 폴리에틸렌 글리콜(PEG)을 수년에 걸쳐 배에 뿌려 보존하고 있다. 그리고 인양해 낸 선박과 각종 부속품들을 커다란 퍼즐을 맞추듯 맞추어 95%이상의 원형을 갖추어 박물관에 보존하고 있는데, 현존하는 세계 유일의 17세기 선박이란다.






바사호는 스웨덴 국왕을 찬양하고 그 힘과 문명, 그리고 정치적 야망을 나타내기 위한 수백 개의 조각상으로 장식되어 있다.



바사박물관 전경

바사박물관 앞의 정원에서. 길 건너편의 건물은 노르딕 박물관이다.


[ 스웨덴 왕궁 ]


1700년대에 지어진 왕궁은 오늘날 스웨덴 왕실의 공식 관저로 사용되고 있는데, 7층으로 이루어진 왕궁에는 600개가 넘는 방이 있단다.




[ 감라스탄 구시가지 ]

스톡홀름의 구시가지인 감라스탄이다. 중세시대의 건축물들이 늘어서 있는데, 건물은 고딕, 바로크, 로코코양식등 다양한 형태로 지어져 있다.





대성당


좁다란 골목길을 가다보면 조그마한 광장이 나타나는데 여기가 일명 피의 광장이라고 불리는 스트르토르 대광장이란다. 말이 대광장이지 우리나라 초등학교 운동장보다 작다. 1397년 칼마르 동맹에 의해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1세 여왕이 노르웨이와 스웨덴을 통치하게 되는데, 1500년대 들어 스웨덴 귀족들이 독립을 위해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2세 왕이 머물고 있는 호텔에 대포를 쏘아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대포가 불발이 되어 미수에 그치게 된다. 크리스티안 2세는 스웨덴 귀족들과 화해를 하자며 이 광장에 600여명의 귀족들을 초청하여 파티를 벌이면서, 광장으로 통하는 골목길을 막아 그 자리에서 집단 교수형 및 학살을 자행했단다. 이 학살로 광장에 피가 흥건 했기에 피의 광장이라 불리워졌단다. 이후 스웨덴은 독립전쟁을 벌여 1523년 구스타브 1세를 왕으로 세운다. 이가 바사왕조의 시작이다.

사진의 붉은색 건물의 벽에 흰색 벽돌의 숫자는 학살된 귀족의 숫자와 같단다.

건물이 오래되어 생활하기에 불편해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외관을 바꿀수 없어 외관은 그대로 두고 내부만 수리한다고 한다. 건물 한채로는 도저히 할수 없으면 내부는 두채를 합쳐서 수리한다고 한다. 두 건물이 안에 들어가 보면 한채로 되어 있단다.


대광장 앞의 상점가.

 

광장 한가운데 있는 조형물은 이 마을 사람들이 식수를 조달하던 우물이란다. 우물 벽에는 붉은 색으로 된 부분이 있는데, 이는 대학살 당시에 피로 물들어져 붉게 되었단다. 그래서 이 우물을 피의 우물이라 부른단다.

노벨상 제정 100년을 기념해 2001년에 건립되었단다. 노벨상의 규모에 비해 박물관은 너무 검소해 보인다.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이곳 문 앞에서 발표한단다. 안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감라스탄 거리 위치(구글지도)

[ Best Western Plus Sthlm Bromma 호텔 ]

저녁에 인근의 마트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하고 돌아오면서 보니 요란한 소리와 함께 인근에서 비행기가 이착륙을 하고 있었다. 호텔이 공항(Bromma Stockholm Airport)인근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텔에서 시끄러워 제대로 잠을 잘수 있을까? 염려가 되었다. 그러나 호텔 현관 문을 들어서는 순간 소음은 사라졌다. 객실에서도 전혀 비행기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방음이 철저히 되어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