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9월 29일) 첫번째 방문한 도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도시이었으나 2차 세계대전 말기 연합군의 대규모 공습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독일의 드레스덴이다.
드레스덴은 중세에 엘베 강의 수로를 이용한 상업도시로서 발전하였고 16세기 이후에는 작센의 수도로 번영하였던 "엘베강의 피렌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였단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은 도시의 모양을 바꾸어 놓았단다. 군사시설이라고는 별로 없고 고전적인 문화도시였던 드레스덴은 2차대전중 거의 공습을 받지 않았단다. 그런데 2차대전 말 연합군의 노르만디 상륙에 이은 파상공세에 독일이 수세에 몰리자, 사람들은 그동안 연합군의 공습이 거의 없었던 드레스덴을 안전한 피난처로 생각하여 이곳으로 모여 들었다고 한다. 그러자 연합군측에서는 드레스덴으로 많은 사람들이 집결하는 것을 수상히 여겨, 마지막으로 독일을 압박하기 위해 이곳에 대대적인 공습을 단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1945년 2월 13일을 D-day로 하여 이틀에 걸쳐 영.미군 항공기 약 1,100여대가 3,300여톤의 폭탄을 퍼부었는데 그중 약 70%가 소이탄이었다고 한다. 당시 화염폭풍으로 인해 지하실이나 방공호의 기온이 섭씨 450도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이 공습으로 14만여명의 사망자를 내고 도시 전체를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D-day라는 말은 이때 처음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D'자는 드레스덴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검은 돌의 도시 건물들
대대적인 공습으로 시내의 거의 모든 건물이 파괴되었으나, 소이탄에 그을린 남아 있던 돌들을 모아 퍼즐 맞추기 식으로, 없는 부분은 새로 깍아 붙여 원상복구하였단다. 이 때문에 시내 전체의 건물들이 검게 그을어 우중충해 보이지만, 이 도시를 전쟁 전의 형태로 거의 완벽하게 복원하여 아름다운 문화유산으로 만들었단다.
츠빙거 궁전
츠빙거 궁전은 독일 바로크 건축의 최고 걸작품으로 손꼽히는 궁전으로 1710년에 착공되어 1728년에 완성되었단다. 아우구스트 대공 시절 드레스덴의 황금기에 만들어진 웅장한 궁전으로 7년전쟁, 나폴레옹의 침입, 2차세계대전 등 여러번 파괴되었으나 매 전쟁후 다시 오랜 시간에 걸쳐 복원되었단다. 아우구스트 대공은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과 이태리를 돌아보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드레스덴에도 이와같은 건축물을 만들기로 마음먹고, 폴란드왕으로 임명된것을 기념하여 이태리 석공들을 데리고 와서 건축하였다고 한다. 건축장인이자 궁중건축가인 마테우스 다니엘 푀펠만과 조각가 발타자르 페르모저의 작품으로, 화려한 축제, 공연, 그 밖의 여흥을 목적으로 회화 갤러리, 분수, 아케이드 등으로 장식되었다. 츠빙거라는 말은 "벽과 벽 사이"라는 뜻인데, 옛 군사요새들 사이의 공간을 이용하여 건물을 세웠기 때문이란다.
츠빙거 궁전의 정원은 사각형의 형태를 가지며 안에 들어서면 밖의 도시와는 다른 푸른 색의 잔디밭이 나타난다. 잔디밭의 앞에는 사방에 각 1개씩의 큰 분수를 가지고 있고 그 사이로 길이 나 있다. 사각형의 벽들에는 각 면에 1개씩 4개의 큰 문이 세워져 있는데, 그 모양이 다 다르다.
그중 가장 멋있는 코로넨토어('왕관의 문'이라는 뜻)는 츠빙거 궁전의 상징이다. 문위에 세워진 돔 위에는 멋있는 왕관이 쒸워져 있다. 이 왕관은 작센왕국이 폴란드를 점령한 것을 기념하여 폴란드왕관의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한다.(아래 사진은 인터넷에서 가져옴)
코로넨토어 맞은편에 있는 젬퍼 오페라하우스 방향 문으로, 무기박물관 및 고전 회화관으로 사용중이란다.
글로켄슈필 파빌리온(편종의 정자)은 정자의 정면 가운데 설치된 도자기 시계로 유명하다. 시계 양 옆으로 도자기로 만든 편종들이 매달려 있는데(아래 사진은 인터넷에서 가져옴) 매 시각 정시에 편종이 울린다고 한다. 원래는 슈타트 파빌리온(도시의 정자)이라고 불리웠으나 1924년부터 1936년까지 이곳의 유명한 마이센 도자기로 편종을 달고부터는 이름을 바꾸어 부른다고 한다.
글로켄슈필 파빌리온의 맞은편에 있는 발 파빌리온(벽 정자)정자 꼭데기에는 아우구스트를 상징하는 헤라클레스 입상이 서 있다. 이 문앞에서는 때에 맞춰 공연이 열린다고 한다.
츠빙거 궁전의 최고의 걸작은 페르모저의 '님프 분수'(요정의 샘)이다. 2층 난간까지 연결되는 다양한 조각들로 만들어진 요정들의 모습과 햇빛에 반짝이며 내뿜는 분수의 모습은 진짜 요정들의 놀이터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분수를 지나 2층 난간으로 올라 갈수 있는데, 정말 다양한 조각품들이 있어 아래 있는 분수와 더불어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요정들을 배경으로 박명부 장로님 부부가 찍혔네요.
우리도 요정이 되어 저들과 함께 어울려 보고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마이젠 도자기로 그린 초대형 그림 "대공의 행진"
레지덴트 궁전. 2차 세계대전 당시 모두 파괴되었지만 운이 좋게도 아우구스트 거리를 둘러싸고 있는 마굿간쪽에 있던 이 외벽(슈탈호프)만은 기적적으로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고 한다.
마이젠 스타일의 도자기 타일 27,000여개로 만들어진 "대공의 행진"은 길이 101.9미터 높이 10.5미터로 베틴왕가의 800주년을 기념하여 1871년부터 1876년까지 그림으로 조성되었으나, 비 바람에도 견디게 하기 위해 1904년부터 1907년까지 한개의 그림을 27,000여개의 도자기 타일로 나누어 그려 다시 설치하었다고 한다. 이 그림에는 총 35명의 후작, 선제후, 공작들이 등장하는데, 11세기의 마이잔의 후작이었던 콘라드 부터 19세기에 단 2년간 재임한 작센의 게오르그까지 담고 있다고 한다.
가장 뒤쪽에 나오는 모자를 쓴 사람이 이 그림을 완성한 빌헬름 발터라고 한다.
젬퍼 오페라하우스
젬퍼 오페라 하우스는 원래 1841년 고트프리트 젬퍼에 의해 지어져 유럽에서도 손꼽히게 아름다운 오페라하우스로 유명했었는데,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망명중인 아버지를 대신하여 그의 아들인 만프레드 젬퍼가 1849년 네오 르네상스 스타일로 다시 지었다고 한다. 이 오페라하우스는 드레스덴 바로크의 상징으로 불렸지만 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되었고 1985년에야 재건되었다고 한다.
"유럽의 발코니" 라고 불리는 엘베강 가의 풍경
"브륄세 테라스"는 강 건너편의 적들로 부터 도시를 방어하기 위한 요새를 공원화한 곳으로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괴테는 이곳을 "유럽의 발코니"라고 불렀다고 한다.
너무 아름다운 드레스덴의 건축물과 조각들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드레스덴 궁. 동화속에 나오는 풍경 같다.
그리고 엘베 강가를 따라 나타나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의 모습들은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이 아름다운 것들을 전쟁으로 다 잃었었지만, 다시 살려낸 그들이야 말로 대단한 민족인것 같다.
드레스덴 시내의 모습
길에는 중세 사람들의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던 마차들이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점심식사를 하러 가는 도중에 결혼식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 웨딩 장식이 달린 버스에 타려고 하객들이 몰려 나오는 그 사이를 비집고 지나왔다.
점심식사를 하러 시내의 식당으로 들어 갔는데, 넓은 홀이 없어서 두 세 가정씩 떨어져 앉게 되었다. 식당 주인은 많은 사람들때문에 바쁘다면서 우리 가이드에게 수건을 팔에 걸어주면서 주문을 받으라고 시킨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식당 앞에서는 어린아이들과 함께하는 이벤트가 진행 중이었다. 아이들이 여러 가닥으로 갈라진 긴 통 입구에 공을 넣고 물을 계속 길어다 부으면 공이 어느 쪽에 있는 통으로 빠져 나가는지를 맞추는 놀이 같았다. 꼬마들이 열심히 물뿌리개로 물을 길어다 부어대고 있다.
바로 옆에서는 노 신사들의 밴드와 어린 소년.소녀들의 무용공연이 있었다. 알프스 소녀와 같은 복장을 한 아이들의 공연이 인상적이었다.
드레스덴에서 1박한 호텔
호텔에서의 기상은 모닝콜로 알려 주지만 시차가 적응이 덜 되어서인지 그 이전에 깨어나게 된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인근 마을을 산책하였다. 마침 호텔 맞은편에서 떠오르는 일출의 장관을 볼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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