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17일(토) ~ 18일(일)
[ 말레이시아 ]
말레이시아에서는 도시를 벗어나면 온통 팜나무 숲으로 덮여 있다.
인천공항에서 에어아시아 항공기를 타고 오후 3시20분에 쿠알라룸푸르공항에 도착하였다.
현지 가이드를 만나 버스를 타고 우선 저녁식사를 하였다. 비행기에서 제공하는 점심식사를 먹은지 오래되어서 우선 배를 채워야 관광을 할수 있을거 같았다. 식사후 푸트라자야 행정도시를 시작으로 쿠알라룸푸르 시내관광을 하였다.
말레이시아는 아시아의 남동쪽에 있는 인도차이나반도의 남쪽 끝자락에 붙은 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 섬의 북부를 차지하고 있다.
말레이반도에는 11개 주가 있는데 이를 서말레이시아라고 하며, 보르네오섬 북부에는 2개 주가 있는데 동말레이시아라고 한다. 총면적은 32만 9847㎢로 우리나라 남한의 약 3.3배, 인구는 약 3천만명으로 우리나라의 60%정도다.
서말레이시아는 13세기에 수마트라에서 건너 온 말레이인의 일족이 투마세크왕국을 건설하였고, 14세기에는 사바의 마자파히트왕국(힌두교)이 말레이반도 전체를 지배하였다. 1405년 투마세크왕국의 후예가 세운 말라카왕국은 말레이반도와 말라카해협을 넘어 수마트라의 동부까지도 지배하였다. 그러나 1511년 포르투갈인의 침공으로 말라카왕국이 멸망하고, 이후 1957년 영연방으로 독립하기까지 400여년간 포루투칼, 네델란드, 영국의 지배를 받았고, 태평양전쟁때는 44개월간 일본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1957년 8월 31일 싱가포르를 제외한 11주가 통합되어 말라야연방으로 독립하고, 1963년 9월에는 인근의 영국 식민지인 싱가포르, 동말레이시아(사바·사라와크)를 합쳐서 말레이시아가 되었으나, 2년 뒤 싱가포르는 따로 독립하였다.
동말레이시아의 사바와 사라와크는 15세기경부터 브루나이왕국의 일부였는데 사바는 18세기 초에 필리핀에게 할양된 후, 18세기 후반에 영국의 북부보르네오특허회사의 소유지가 되었다. 사라와크는 19세기 중엽부터 영국인 브루크가 브루나이왕국에게서 할양받은 지역이었다. 사바와 사라와크는 모두 태평양전쟁때 일본에 점령당하였다가 종전 후 1946년부터 영국의 직할식민지가 되고 1963년에는 말레이시아연방에 가맹하였다.
종족구성은 말레이인 58%, 중국인 25%, 인도파키스탄인 7%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국이 지배할 당시 고무, 팜, 주석 산업을 개발하기 위해 중국인·인도인 노동자를 많이 이주 시켰기 때문에 중국인과 인도인이 많다. 각 민족은 제각기 전통적 문화·종교·언어·사회관습 등을 고집하고 있으며, 공용어는 말레이어이며 영어·중국어·타밀어도 쓰인다. 국교는 이슬람교로 60%를 점유하나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불교 19%, 기독교 9%, 힌두교 6.3%의 비율을 보인다.
말레이시아는 입헌군주국이며, 국가 원수는 국왕인데, 9개 주의 왕이 5년 임기로 돌아가며 국왕이 된다. 국왕은 상징적인 국가원수이며, 총리가 모든 국가행정을 관할한다. 197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의 경제개발 모델을 참고하여 경제개발을 추진하였고, 건축, 도로, 교량 등 건설사업에 우리나라 업체가 많이 참여하였다.
[ 푸트라자야 행정수도 ]
푸트라자야는 말레이시아의 새로운 행정수도로 원래의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에서 남쪽으로 약 2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전 총리의 아이디어로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과밀화 및 혼잡을 줄이기 위해 1995년 공사를 시작하여 1999년에 완공하여 말레이지아의 행정부서가 쿠알라룸푸르로부터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그렇지만 쿠알라룸푸르는 상업과 금융의 중심지로 여전히 말레이시아의 수도로 남아있으며, 왕실과 입법부는 아직도 쿠알라룸푸르에 있다. 도시 이름은 말레이시아의 초대 총리인 툰쿠 압둘 라만 푸트라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으며, 세계적으로 성공한 행정도시로 평가받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신행정수도인 세종시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세종시는 아직 완성이 안되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곳은 세종시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아름답게 건설되어있는거 같다.
푸트라 모스크
이슬람 사원인데 온통 핑크색 대리석으로 지어졌다.
총리 공관
말레이지아 총리가 거주하는 곳이란다. 이나라는 왕이 있지만 실제적인 통치는 총리가 한단다. 그러니까 이 건물이 이나라 실권자가 사는 집이란다.
국기게양대
광장 중앙에는 말레이시아 국기를 가운데 두고 13개 주의 깃발이 게양되어 있다.
푸트라자야 시내거리의 아파트
[ 쿠알라룸푸르 ]
말레이시아의 수도인 쿠알라룸푸르는 수상을 비롯한 행정부가 푸트라자야로 옮겨졌지만 국왕의 왕궁, 의회, 그리고 사법부의 일부는 여전히 쿠알라룸푸르에 남아있다. 말레이반도의 중서부 메인 산맥 서쪽 구릉지대의 클랑 강과 곰바크 강의 합류점에 있는 이 도시는 말라카 해협의 클랑 항에서 동쪽으로 40㎞ 떨어진 서해안 주석·고무지대의 중간 지점에 있다. 말레이어로 '흙탕물의 합류'라는 뜻인 쿠알라룸푸르 시는 1857년 87명의 중국인 주석 광부들이 지금은 교외지구가 된 암팡에 부락을 건설한 것이 시초였다. 이 지역은 말라리아가 만연하는 밀림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두 강 유역을 낀 지리적 이점 때문에 주석 중심지로 번창했다. 1880년 클랑을 대신하여 주도가 되었으며, 1882년에 이곳 주재 영국 외교관으로 부임한 프랭크스웨트넘 경의 노력으로 급속히 성장했다. 그는 클랑-쿠알라룸푸르 철도 건설을 주도했으며, 화재예방과 위생대책의 일환으로 건물을 지을 때 벽돌과 타일을 사용하도록 권장했다. 이 나라 영토의 중심부에 있는 지리적 여건에 힘입어 1895년에는 말레이 연방의 수도로 선정되었고, 1957년에 독립 말라야 연방의 수도, 1963년 말레이시아의 수도가 되었다. 연방 최대의 도시로서 문화·상업·교통의 중심지이다. 1972년에 자치시로 지정되었다.
[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
쿠알라 룸푸르 중심지인 KLCC(Kuala Lumpur City Centre)에는 말레이시아의 발전을 대변하는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가 있다. 452m, 88층 높이의 쌍둥이 빌딩으로 1998년 국영 석유 회사인 페트로나스가 건설했다. 오른쪽 1관은 일본 건설사, 왼쪽 2관은 한국 건설사, 스카이 브리지는 프랑스 건설사에서 시공하였다. 이 건물은 2003년 10월 17일, 타이베이101에게 자리를 내주기 전까지 5년간 세상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칭호를 유지하였었다. 41층에는 두 빌딩을 잇는 스카이 브리지, 86층에는 전망대가 있어 쿠알라 룸푸르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두 빌딩 아래쪽 6개 층에는 수리아 KLCC라는 쇼핑몰이 있다.
트윈타워
트윈타워 정원의 음악분수
동영상
트윈타워 인근의 빌딩들
[ 쿠알라룸푸르 야시장 ]
동남아 여행의 즐거움은 역시 야시장을 둘러보는 일이다. 쿠알라룸푸르 야시장 역시 먹거리가 풍성했다. 골목마다 사람들로 인파를 이루고 있었고, 그 사이를 빠져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과일가게에서
우리나라에서 먹기 쉽지않은 열대과일인 두리안, 망고, 망고스틱을 맛있게 먹었다. 사람들이 먹기에 거부감을 느끼는 과일의 황제라는 두리안을 모두들 거부감 없이 잘들 먹는다. 전에 방콕에서 먹을때는 역겨워서 잘 못 먹었었는데, 이곳에서는 별 부담없이 먹었다.
호텔에서
호텔 안내실이 도서관 같다.
[ 말레이지아 왕궁 ]
말레이지아는 각 주 별로 왕들이 있는데, 9개 주의 왕들이 차례대로 돌아가며 국왕이 된단다. 각 주의 왕들이 5년의 임기로 국왕을 하게 되는데, 한 사람이 두번 하려면 45년 후에 왕이 될수 있단다. 그런데 현재의 왕은 93세로 전에 왕을 한 적이 있는 왕이란다. 왕이 궁에 있는 날에는 노란 깃발이 걸린단다.
[ 전쟁기념관 ]
말레이시아의 자유를 위해 희생한 호국 영령을 위해 건설되었단다.
[ 메르데카 광장, 독립광장 ]
이곳은 1957년 8월31일 말레이시아의 첫 국무총리인 툰쿠 압둘 라만이 수많은 군중 앞에서 말레이시아의 독립을 선언한 곳이다. 독립 광장의 국기게양대에 있던 영국의 국기인 유니언 잭이 내려지고 말레이시아의 국기가 게양되었다. 이곳은 영국령임을 상징하던 장소로, 식민 정부 관료들의 크리켓 경기장이었으며, 말레이시아의 가장 특별한 백인 전용 클럽이었던 로열 슬랑오르 클럽의 앞에 있던 곳이었다.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기 게양대 중의 하나가 세워져 있다.
[ 바투 동굴 ]
바투 동굴은 쿠알라룸푸르 북쪽으로 13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석회암 동굴로 가파른 절벽위에 자리잡은 힌두교 성지로 알려져 있다. 1878년 미국인 탐험가 윌리엄 호너비가 이곳을 탐사한 뒤 세상에 알려졌고 1891년에 힌두교 사원이 세워졌다. 인도 타밀족이 숭배하는 힌두교의 신 무루간을 모시고 있어 매년 타이푸삼 축제 때 힌두교인들은 각지에서 은마차에 무루간의 초상 또는 신상을 싣고 바투 동굴로 모여든다고 한다.
바투 동굴은 겉으로 보기에 수목이 우거진 야산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빗물이 4억 년 된 석회암을 녹이면서 생긴 큰 동굴 세 개, 작은 동굴 한 개가 있다. 가장 큰 동굴은 길이 400m, 높이 100m인데 이곳에 힌두교 신전이 세워져 있다. 동굴의 천장에 구멍이 뚫어져 있어 하늘이 보이고, 천장에서 흘러내린 빗물 자국, 석순, 석주 등을 볼 수 있다.
동굴로 오르는 272개 계단 위에서는 쿠알라룸푸르 시내의 풍경과 무르간 신상의 뒷모습이 보인다.
바투 동굴 입구 주변에는 야생 원숭이가 서식하여 관광객들에게 장난을 치기도 하고 포즈도 잡아준다.
바투 동굴 입구의 삼문에서 바투 동굴로 이어지는 272개의 계단은 인간이 범할 수 있는 죄의 숫자를 의미한단다. 계단은 3갈래인데 왼쪽은 과거의 죄, 중앙은 현재의 죄, 오른쪽은 미래의 죄를 뜻한다. 타이푸삼 축제에서는 고행자가 인간의 삶의 무게인 카바디를 짊어지고 계단을 오르며 참회하는 의식이 있단다.
힌두교 3대 신 중 하나인 시바(Shiva)의 둘째 아들 무루간은 전쟁의 신으로 인도 타밀족이 가장 숭배하는 신이란다. 바투 동굴의 무루간 신상은 2006년 인도 장인들에 의해 42.7m의 높이로 세워졌는데 악신을 물리칠 때 쓰는 창살을 들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번영의 여신 스리 마하 마리암만에게 장남 카나바다와 차남 무루간이 있었는데, 그녀는 두 아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찾아 세상을 세 바퀴를 돌고 먼저 오는 사람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무루간이 집을 떠나 고행하며 세상을 세 바퀴 도는 동안, 카나바다는 집에서 빈둥거리며 놀았단다. 이를 본 스리 마하 마리암만이 꾸중을 하자, 카나바다는 그녀의 주위를 세 바퀴 돌며 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감동한 스리 마하 마리암만은 자신의 자리를 장남에게 물려주었는데, 세상을 세바퀴를 다 도는 고행길에서 돌아온 무루간은 이 사실을 알고 실망하여 바투 동굴로 들어가 버렸단다. 훗날 자신이 경솔했음을 안 스리 마하 마리암만이 바투 동굴로 무루간을 찾아갔으나, 1년에 한 번만 만나 주었다는데 이때가 타이푸삼 축제일이라고 한다. 해마다 1월 말~2월 초의 타이푸삼 축제 때에는 말레이시아의 힌두교인들은 각지에서 은마차에 무루간 초상이나 신상을 싣고 무루간을 모신 바투 동굴로 행진을 한다. 무루간 신을 모신 바투 동굴 앞에서 힌두교 신자 중 자원자들이 쇠꼬챙이, 쇠고리로 신체를 관통하는 고행을 행하는데 신기하게 피를 흘리지 않고 통증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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